▒ 러닝 스케어드(Running Scared) 

- 아류(亞流)의 또다른 변형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영화 ▒

 가만있어도 끈적거림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는 열대야의 한 복판에서 영화 한 편을 봤다.
 기분이라도 시원스럽게 하기 위해 액션 스릴러물을 골랐는데, 그게 바로 「러닝 스케어드(Running Scared)」다.
 본의 아니게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게 만든 갱단 조직원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라는데, 기분만 잡쳤다.
 등장인물들이 얽히고 설키고 하면서 관객의 관심을 끄는데는 성공했을 법하나, 미덕(美德)으로 내세운 폭력과 극단적 설정도 그저 그렇고, 게다가 반전은 너무나도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그동안 관객이나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영화의 아류(亞流)란 또 다른 변형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 만족한 관객에게는 할 말이 없지만, 그래도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드는 영화, 신선하지도 기발하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 무턱대고 찬사를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아류의 또다른 변형이란 느낌을 받은 「러닝 스케어드」를 양파 껍질처럼 하나씩 벗겨보자.


 영화는 복부에서 피가 흐르는 어린 아이와 아이를 안심시키며 거칠게 차를 몰고 가는 미국의 전형적인 놈팽이(?)의 장면부터 시작한다.
 뉴저지주 그림리에 사는 조이 가잘레(폴 워커役)는 집에서는 극히 가정적인 가장이지만, 밖에서는 이탈리아 마피아 페렐로 조직의 조직원으로 범죄 활동을 하는 이중적 생활을 해오고 있다.
 어느 날 조이는 마약거래 현장에서 일어난 부패경찰과의 총격전에 가담하게 되고, 조직보스의 아들(죠니 메스너役)이 경찰을 살해하는데 사용된 총의 처분을 받게 된다.
 그러나 조이는 이 총을 곧바로 처리하지 않고, 자신의 집 지하창고에 보관한다.
 조이의 이같은 조치는 마침 창고에서 놀고 있던 아들과 아들의 친구(카메론 브라이트役-이 친구는 어린 나이이면서도 꽤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주로 갈등주체의 한 복판에 서 있는 핫 포테이토나 신비에 가득찬 캐릭터를 연기-최근 「울트라 바이올렛(Ultra Violet)」에서 보듯-한다)에게 목격되고, 아들의 친구는 이 총을 몰려 가져간다.
 그리고 조이의 조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또 하나의 갱단 보스의 조카가 계부로 있는 집으로 가져가, 때마침 서부영화를 빌미로 폭력을 휘두른 계부에게 발사한 뒤 도망친다.
 이때부터 이 총을 둘러싼 각 이해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영화를 전개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폭력은 다반사로 발생하며, 부패한 경찰(채즈 팔멘테리役-「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에서의 치밀하고 냉철한 ‘쿠얀’에 빠진 나로서는 이 영화를 보며, 왜 그가 이런 영화에 출연했을까 하고 의문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사창가 포주 등 수많은 인물이 이 총을 매개물로 일종의 연(緣)을 맺는다.
 영화는 종반에 치달으면서 그동안 협력관계를 유지해왔던 두 범죄조직이 아이스하키장에서 대결하고, 피비린내나는 총격전이 벌어지며, 이 과정에서 한낱 마약조직의 하수인에 불과했던 주인공 조이가 마약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10여년이 넘도록 잠복근무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결국엔 조이와 아들의 친구만이 살아남고, 조이와 가족, 그리고 아들의 친구는 거짓 장례식을 치른 끝에 이름모를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으로 끝이 난다.

 

 

 미국 개봉시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이 영화에 대해 냉담한 반응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러닝 스케어드」는 각본도 쓴 적이 있는 감독 '웨인 크레이머(Wayne Kramer)'가 심혈을 기울여 제작했지만, 여러 가지 영화를 차용해서 만든 그저 그런 짬뽕식 영화라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각본과 감독을 겸한 크레이머 감독은 마치 「펄프 픽션(Pulp Fiction)」과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을 10일 연속 반복해 본 후, 바로 각본을 쓰기 시작해서 쓰러질 때까지 타이핑을 한 것처럼 보인다”고 빈정거렸다고 한다.
 영화를 본 내 생각도 그런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나는 이 영화를 관람할 때 '가이 리치(Guy Stuart Ritchie)' 감독의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Rock, Stock and Two Smoking Barrels)」가 오버래핑됐다.

 이 영화 또한 「러닝 스케어드」와 마찬가지로 우연히 사건-도박빚을 진 주인공이 친구 3명과 함께 마약조직을 턴 것-이 등장인물간 서로 얽히고 설키는 관계로 발전하면서 폭력과 살인이 일어나고, 결국엔 엉뚱한 사람이 이득을 찾아가는 것으로 결말이 난다.
 「러닝 스케어드」는 그러한 면에서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를 차용했고, 내 생각엔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의 전형적인 아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을 가운데에 두고 여러 명이 원의 형태로 둘러싸 공을 서로 주고받을 때 우리의 눈이 사정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이 두 영화는 한 사건의 발생이 여러 등장인물과 관계를 맺으면서 복잡다단해지고, 이를 좇아가는 우리의 눈과 두뇌도 사정없이 돌아간다.

 그러한 면에서 「러닝 스케어드」는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를 빼다 박았다(?).
 다만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가 종전 영화와는 다른 스토리를 전개했다는 점에서 그 신선함이 미덕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이미 선보인 플롯을 사용하는 「러닝 스케어드」의 미덕은 무엇이란 말인가.
 반전이래야 반전이라도 할 수 없는 마지막의 의외성도 마찬가지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에서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됐던 총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주인공들은 총은 물론이고 1파운드도 차지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수많은 악인들은 하나 둘씩 죽어가는데, 자신의 아이를 끔찍이 사랑하는 청부업자가 모든 이득을 얻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의 반전은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 센스(The Sixth Sense)」의 것보다는 족탈불급(足脫不及)일지라도 다른 뉘앙스를 풍긴다.
 「러닝 스케어드」의 반전은 정말 말도 안 나온다.
 비록 폭력을 사용했다 하지만 식물인간인 아버지가 있고, 갱단의 아내라도는 도저히 믿기도, 현실성 있기도 힘든 자신을 끝까지 믿는 어여쁜 아내가 있으며, 자식까지 있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살까하고 혀를 끌끌 차게 만들었던 주인공이 마약조직 소탕을 위해 10년간 잠복근무를 했던 경찰이란다!
 도대체 이게 가슴에 와닿는 반전이란 말인가?

 

 

 결국 「러닝 스케어드」는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에서 내가 느낀 두 가지 미덕, 등장인물간의 얽히고 설키는 플롯, 후반기의 반전 면에서 욕교반졸(欲巧反拙)의 함정에 빠진 꼴이다.
 인터넷을 살피다보니 제법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는 네티즌이 보인다.
 이들에게 언제 시간이 있으면,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를 한 번 관람해보길 권장한다.

 


나는 매일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꿀밤이네 구름두둥실 ★꺼비의 이야기★ 칼리스타 다물 나만의 작은 공간 가슴이 예쁜 내 마음대로 디자인한다 굿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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